하나님은 누구의 편인가?

람세스
람세스

이것은 신앙이 본질에서 벗어나 종교가 될 때 나타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하나님은 우리 편이다’는 대답을 전제한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 종교인들은 온갖 교리를 생산하고 복잡하고 까다로운 의례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와 타자가 발생하고 구원과 심판이 파생된다. 동일한 제의(祭儀)와 교의(敎義)를 공유한 사람들은 선민의식으로 결집된다. 선민의식은 ‘우리’ 안에 가장 강력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과 함께 타자에 대한 배타성을 동시에 갖는다. 그리고 타자에 대한 저주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유대 민족의 선민의식은 매우 유별나고 강력했다. 탄압과 억압 가운데 성장한 피지배 소수민족이 하나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결집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오직 우리의 편이라는 신조를 낳은 것이다. 이렇게 강화된 신조가 자신들의 정신을 왜곡하고 예수를 살해했던 것이다. 자신들이 소유한 율법(토라)을 교조적으로 신봉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런 태도는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도는 과정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여러 나라의 문화를 접하면서 융합하거나 수용하기보다 자기만의 독특한 종교 의식과 사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들은 가는 데마다 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홀로코스트는 그것의 정점이었다.

시오니즘(zionism)은 탄압받는 난민들이 다시 선민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유대 민족주의 이념이다. 이를 통해 그들은 2천 년 동안 조상 대대로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고 그 땅이 마치 자기 고유 영토였던 것처럼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탄압받고 학살당하던 과거 자신들의 경험을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저지르는 악행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팔 전쟁은 유대인들의 비열하고 악랄하며 잔혹한 군사적 위협과 공격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에서 촉발됐다.그런데 우리의 시각은 이스라엘과 서구 언론이 제공하는, 편향된 정보와 뉴스에 사로잡혀 있다. 팔레스타인의 상황과 맥락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시각에서 현재의 전쟁 상황을 일방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을 과격한 폭력 집단으로 보는가 하면 가자 지구에서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집권한 자치정부인 하마스를 테러집단이라고 매도한다. 때문에 이-팔 전쟁을 대하는 젊은 사람들의 인터넷 댓글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증오와 저주로 가득 찼다. 한국의 개신교인들의 태도 역시 유대인의 선민의식 안에서 작동한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팔레스타인은 가나안 땅의 블레셋 족속이라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이 블레셋에서 연원했다는 하나의 사실만으로 그 땅의 사람들을 잔혹하게 학살해도 된다고 생각하며 유대인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 유대인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독점적으로 소유한 선민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폭력과 학살 같은 반인륜적 만행도 선민의식으로 이해되고 용인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하지만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넘어서 모든 생명의 주인이며 탄압받고 억압당하는 약자들의 아버지라고. 신명기 7장 7절에서 야훼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아서가 아니라 가장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관심은 힘 있고 능력 있는 자들이 아니라, 약하고, 가난하고, 못난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이 선택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가장 악랄하고 잔혹한 군사적 침략행위를 힘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팔 전쟁은 전쟁이 아니다. 전쟁이란 대등한 상대들이 군사적으로 다투는 행위다. 가자지구의 좁은 공간에 사람을 몰아넣고 분리장벽으로 가두어 민간인들의 주거지역에 폭격을 가하는 게 어떻게 전쟁인가. 그것은 일방적인 학살이다. 그래서 난 이-팔 전쟁이 아니라 이-팔 학살이라고 부르고자 한다.이런 야만적이고 잔학한 행위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응원하는 게 지금 한국 교회의 모습이다.

이제 교회들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와 자료로 교인들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강자의 편에 서고 야만적 행위를 응원하면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편이라고 주장하는, 이 정신병적인 현상을 치료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을 치유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과 태도를 치유하지 않으면 세상이 교회를 치유하려 하거나 교회를 제거하려 들 것이다.많은 자료와 정보들이 있지만 내가 접한 자료 중에 목회자와 평신도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몇 개의 자료를 여기에 소개하고 싶다.


개리 버지 |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자인 저자는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딜레마에 빠진 그리스도인의 자리에서 자신의 고통을 고백한다. 그리고 역사적 맥락과 상황 인식을 통해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며 그 노력으로 성서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교정을 요구한다. 우리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복음주의 기독교의 인식을 교정할 수 있는 성서적 근거를 충분히 제공한다.

안영민 | 팔레스타인에 물들다

저자는 사회활동가로 팔레스타인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를 여행하며 그곳에 머물며 경험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와 상황을 여행기 형식으로 기술한다. 종교적, 이념적 편견 없이 그곳의 상황을 날것으로 경험한 저자의 생생한 증언을 따라가다 보면 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선제 공격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행기 형식이라서 남녀노소 누구나 편히 읽을 수 있으며 사진이 풍부하게 실려 있어 실감을 더한다.

곽건용, 꽃자리 | 정말 야훼가 다 죽이라고 명령했을까?

이스라엘이 전쟁 중에 야훼가 내린 명령인 "진멸하라(헤렘)"는 말이 과연 문자적으로 신봉할 수 있는 것이었는지에 대해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진멸하라는 잔혹한 학살 명령을 역사적 상황과 맥락에서 들여다 보며 그것이 야훼와의 언약관계를 위한 수단이었음을 말한다. 즉 학살은 생명에 대한 처분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때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중 학살 행위를 응원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인남식 | 교수의 중동학개론

현재의 중동의 정치 지형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사료들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상황과 맥락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중동과 팔레스타인 문제가 미국과 서방의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에 따라 어떻게 조작되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해 준다.